2月19日 동해로 떠낫습니다 ,(15)
F-14의 개발 역사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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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현재 미 해군에서는 완벽하게 퇴역했지만 이란 공군에서는 여전히 20대 이상이라는 만만치 않은 수가 활동하고 있는 F-14 "톰캣"(이란 공군 운영 내용은 본 블로그의 F-14에 따로 설명해두었습니다)
워낙 비싼 대당 가격과 막대한 운용비용으로 인해 세계 1위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조차도 결국 운용을 포기한 기종이지만 1970년대 처녀 비행을 실시한 이래 30년 이상을 현역에서 활약하며 최신 전투기들에게도 그다지 꿀리지 않는 성능을 보유한 F-14 톰캣의 탄생 과정은 그렇게 순탄한 것이 아니었다.
《 소련 장거리 폭격기들의 위협, 미 해군의 대책 》
1950년대 말 미 해군은 장거리 공대함 미사일을 탑재한 소련 공군의 Tu-95와 같은 장거리 폭격기 편대의 존재에 큰 위협을 느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운용한 V2 로켓은 비록 그 성능면에서 불완전한 것이었지만 미사일이라는 신병기의 가능성을 제시했고 이 때문에 종전 이후 어느 정도 경제력을 회복한 서유럽과 소련은 경쟁적으로 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린 결과 사정거리와 명중률이 급격하게 향상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수백km 밖에 위치한 표적, 즉 미 해군의 항공모함이나 구축함을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고 이에 따라 미해군의 항모대공 방위 반경에서 벗어나 미사일을 발사한 후 신속하게 복귀하는 소련 공군 장거리 폭격기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함대로부터 가급적이면 멀찌감치 마중 나가서 신나게 두들겨 패줄 수 있는 함상 전투기의 보유가 필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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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 Tu-95를 발견하고 초계비행중이다. 이를 Patrol임무라고한다. 적기가 가까이 오면 비록 위협행위는 하지않았지만 근접하지 못하도록 시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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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F-14A는 F-14 최초의 생산형으로 3단계의 생산 과정으로 계획되었지만 B형과 C형 계획이 전면 취소됨에 따라 1985년까지 총 545대가 생산되었다. 그 대신 A형의 생산 블록에 따라 세부적으로 약간씩의 차이가 있는데 1971년 회계 연도분의 블록 60에서 85년 회계 연도분의 블록 140까지 총 18개에 이른다.
이 18개에 달하는 블록들은 대부분 기존의 생산형들에도 상당수가 적용되어 이란 공군의 기체를 제외한 미 해군의 F-14A는 대부분 동일한 형태를 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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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초기형의 경우 기수 하부에 장착되었던 IRST가 TCS로 통칭되는 AAX-1 TV 카메라로 교체돼 1983년부터 포인트 머그에서 시험을 거친 후 133대가 생산되어 장비되었다. 1991년에는 대지 공격력 강화를 위한 개수를 실시해 장기간에 걸쳐 이뤄졌고 1997년부터 일부 기체에 랜턴포드가 장비되었지만 예산 부족으로 비행대별로 2~3대 정도만이 실시되는데 그쳤다. 사진의 기수하부에있는것이 IRST이다.
《 더글라스의 F6D 미사일리어 개발 실패 》
최근이야 지대공 미사일이라든지, 이지스/APAR 등으로 대표되는 방공 시스템까지 등장했으니 이러한 위협이 어느 정도 감소했지만 적어도 당시로서는 그러한 것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결과 미 해군은 자국의 중요한 전력인 항공모함 기동부대의 방공능력 향상에 못지 않게 장거리 수색 및 추적이 가능한 레이더와 장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는 함대 방공 전투기의 개발을 추진하게 된다.
하지만 전투기란 것이 그렇게 쉽게 뚝딱 생산되는 병기가 아니었고 우선은 이 전투기에 탑재될 미사일의 개발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1958년 12월, 차기 함상 전투기 탑재 미사일 개발 사업 입찰에서 벤딕스/그루먼 팀의 안이 채택되어 XAAM-N-10 "이글"이란 개발명이 부여되었다.
여기에서 이글은 핵탄두를 장착한 최대 속도 마하 3.4의 2단식 공대공 미사일로 사정거리부터 당시의 평균 스펙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무려 160km나 되는 엄청난 사정거리 덕분에 발사 후에는 반드시 무선 유도 방식을 사용해야 했고 어느 정도 중간급 거리를 통과한 후에는 미사일 내부에 탑재된 자체 레이더를 이용해 스스로 목표물로 돌진하는 액티브 레이더 호밍 방식을 적용했다. 그 결과 이글은 훗날 F-14에 탑재되는 피닉스의 기본 베이스가 되었다.
'이글'을 통해 미사일의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되자 미 해군은 전투기 개발도 추진하게 되었다.
그 결과 1959년 미 해군에서 제시한 요구사양에 부합되는 안건을 제안한 방산업체는 총 6개!
각각 다양한 안건을 제시했고 미 해군의 철저한 심의를 거친 결과 1960년 7월, 마침내 더글라스상의 D-9766이 선정돼 F6D 미사일리어라는 제식 명칭으로 개발이 시작되었다. F6D는 대형 레이더 안테나와 FCS를 장비하고 주익에 최대 6발이 이글 공대공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었다.
여기에 만약 상황이 급박하다면 2발을 추가로 탑재할 수 있었는데 이와 같은 무장을 탑재한 상태에서 함대로부터 최대한 장거리를 이격해 4~6시간 동안 초계 비행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항속거리를 갖추도록 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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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맥도널 더글라스의 F6D 미사일리어. 초음속 전투기인 F-4 팬텀Ⅱ로는 장시간 체공이 어려워 아음속 전투기로 설계되어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기체로 주목을 받았지만 맥마나라의 취임과 함께 취소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 기체에 운용할 목적으로 개발된 이글 미사일은 AIM-54 피닉스의 모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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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AAM-N-10 "이글" 공대공 미사일로부터 발전한 AIM-54 피닉스. 공대공중에서는 최고를 자랑하였다. F-14가 훈련중 바다에 빠진사건이있었는데, 국방부의 지시는 비행기는 중요치않으니 반드시 미사일을 회수하라는 지시가있어서 그 심해에서 온갖 첨단 장비를 동원하여 미사일만을 회수하기도하였다. 미사일 회수는 소련이나 중국등으로 그 기술이 넘어가지 않게하기 위함이었다.
F6D는 아음속 전투기로 최대 속도가 마하 0.9에 불과했는데 그러함에도 미 해군이 관심을 가진 이유는 초음속 제트 전투기들로는 해결하기가 어려운 난제인 막대한 연료 소모 때문이었다.
당시 최신형이었던 F-4 팬텀Ⅱ 초음속 전투기는 마하 2급의 최대 속도로 상승 속력 등 당시 세계 최강의 전투기로 불리기에 충분한 스펙을 가지고 있었지만 소련 공군의 장거리 폭격기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자칫 요격 타이밍을 놓칠 가능성이 높았고 무엇보다 막대한 연료 소모로 인해 장시간의 비행이 곤란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미 해군은 속도는 느리지만 대신 장시간 체공할 수 있는 F6D에 기대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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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당시 미해군의 주력기인 F-4는 비록 엔진의 파워도 강력하고, 운용 능력은 충분했으나, 외부 연료 탱크없이 한시간 남짓한 비행시간으로는 먼거리에서 미사일을 발사하고 달아나는 소련의 장거리 폭격기를 뛰쫒기는 무리였다.
앞서 언급한 장점에 따라 F6D는 항속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연료 소모가 적은 터보 팬 엔진인 JTF10A를 2기 탑재하기로 했는데 이 엔진은 세계 최초의 군용 터보팬 엔진으로 훗날 TF30-P-2로 제식 명칭이 변경되어 F-111B와 F-14A에 탑재되었다.
F6D는 장시간의 비행을 위해 조종사 2명과 미사일 유도 관제사 등 3명이 탑승하고 레이더 FCS는 1956년부터 웨스팅 하우스가 개발하고 있던 APQ-81을 장비할 예정이었다.
이 레이더는 16개의 목표물을 추적해 동시에 8개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문제는 공격기 부대의 엄호와 대지/대함 공격 임무는 전혀 맡지 않은채 함대 방공 임무만을 수행하는 단일 목적 전투기라면 소요 대수가 극히 적을 뿐더러 비용대 효과면에서 효율이 너무 낮았다.
이 때문에 굳이 이런 전투기를 개발해야 하느냐? 식의 찬반 논란이 자주 일어났고 1961년 1월 케네디 정부가 들어서면서 취임한 로버트 S. 맥마나라 국방장관은 비용 절감을 위해 4월, F6D의 개발을 취소시켰고 그 결과 이글 공대공 미사일의 개발도 중단되었다.
그 결과 미 해군으로서는 청천벽력과 같은 상황에 처했지만 F6D의 개발 취소 이후에도 차세대 함상 전투기와 공대공 미사일 개발 사업의 꿈은 완전히 접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러 시제기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와중에 그 가능성을 제시한 기종이 있었으니 바로 F-111 개발 사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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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피닉스미사일을 발사하는 F-14. 현재 이란 공군은 워낙 많은 양의 피닉스 재고를 소모했고 여러 루트를 통해 피닉스의 수명 연장 키트 등의 부품을 입수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으며 미국 역시 절대로 이란에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차단하고 있다.
미 공군의 전투 폭격기와 해군의 제공/함대 방공 전투기를 하나로 통합한다는 웅대한 구상으로 개발된 이 전투기는 엔진의 신뢰성과 중량 초과로 해군의 항공모함에서 운용하기 곤란한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었다.
이게 뭔 소리인고 하니 당시 미 해군은 최소 22.7톤 정도를 계획했지만 개발 과정에서 중량은 더욱 증가해 28.8톤에 이르렀고 최종적으로는 31.75톤에 이르러 개발비는 급격하게 상승하게 되었고 항공모함에서는 난리가 났던 것이다( 저렇게 중량이 무거워진다면 자연히 탑재할 수 있는 기체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은 당연지사고 항공모함에서 운용하는데도 많은 지장을 초래할 것이 '뻔할 뻔'자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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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최초의 미해군과 미공군의 통합전투기 JSF라고할수있는 F-111. 당시 미 공군은 F-105 썬더치프를 대체할 기종을 찾고 있었고 미 해군은 함상 전투기를 물색하던 차에 비용대 효과를 무척 좋아하던 국방장관 맥마나라의 명령으로 미 공군의 전폭기와 해군의 제공/함대 방공 전투기를 통합한 기종으로 설계된 F-111. 하지만 공군용의 F-111A는 나름대로 채용에 성공했지만 해군용인 F-111B는 갈수록 대형화된 기체로도 모자라 중량이 점차 증가되었고 이런 상황에서는 도무지 항공모함에서 운용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노스롭 그루먼사는 이런 문제점을 간파하고 VFX 안을 제시함으로써 톰캣을 탄생시켰다. F-111B는 실패했지만 제공/함대 방공임무 수행에 충실하게 설계되어 휴즈사가 개발한 AN/AWG-9 레이더는 F-14A에도 그대로 유용되는 등 F-14의 기술적, 장비적 난제를 해결해 주기도 했다.
결국 F-111 개발 사업은 미 공군의 독자 추진으로 공군용인 F-111A 4개 비행단이 채용되어 실패작이 되지는 않았지만 미 해군으로서는 대략난감에 처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미 해군은 가변익 기술과 TF30 터보팬 엔진, AN/AWG-9 레이더, AIM-54 피닉스 공대공 미사일을 개발하면서 막대한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어느 정도는 투자비 원가를 건질 수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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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노스롭 그루먼은 미 해군의 제공/함대 방공 전투기 사업에서 F-111B의 실패를 예상하고 F-4 팬텀 수준의 작은 기체를 가지면서도 미 해군이 요구하는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전투기에 판돈을 걸었다. 그 결과F-14의 기초를 다진 모델 303이 등장했다. 초기 개발모델은(사진) 가변익이 아닌 고정익을 장착한303F로 노스롭 그루먼은 언제 바뀔지 모를 미 해군의 요구 조건에 대응해 여러 가지 설계안을 사전에 작성해 둠으로써 당당하게 톰캣의 채용에 성공했다.
미 해군이 F-111 사업으로 골치를 겪고 있을 무렵 노스롭 그루먼사는 이 전투기의 채용이 실패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를 기회로 삼아 F-111의 개발에 채택된 TF30 터보팬 엔진과 AN/AWG-9 레이더, AIM-54 피닉스 공대공 미사일 등을 운용할 수 있는 새로운 함상 전투기를 구상했다.모델 303으로 명명된 이 기종은 VFX-1으로 개칭되어 함대 방공 임무 외에도 제공 전투와 공격기 편대 엄호, 적 폭격기 요격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노스롭 그루먼 사는 1953년 모델 97이 보우트사의 F8U 크루세이더에게, 1955년에는 모델 118이 맥도널 더글라스 F4H 팬텀Ⅱ에게 참패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해군의 지원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자체적으로 투자를 해 연구를 진행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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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어느 정도 성과가 진행되면서 노스롭 그루먼사는 VFX-1과 엔진을 ATE로 변경한 VFX-2 계획안을 1967년 10월, 미 해군에 제안했다. 미 해군은 F-111로 인해 골머리를 썩히는 상황에서 F-111의 무장과 엔진 등을 그대로 유용하면서도 정작 크기는 F-4 수준으로 감소시킨 이 전투기 계획안에 관심을 보였고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F-111과 VFX의 비교 검토를 실시했다.
비교 검토는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중량과 크기로 골치아팠던 F-111보다는 VFX가 더 쓸만하다는 것이 자명했고 여기에 당시 주력 전투기였던 맥더널 더글라스 F-4J 팬텀Ⅱ보다도 우수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베트남 전쟁의 전훈에 따라 기동성이 우수한 전투기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VFX의 우수한 기동력에 주목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1967년 모스크바 에어쇼에서 소련 공군의 3세대 전투기인 미그 23, 25, Su-15 등의 우수한 신형 전투기가 등장하면서 미 해군은 VFX를 어떻게든 빠른 시일내로 확보하기를 희망했다.
그 결과 미 해군은 실패한 F-111 사업에서 발을 뺌과 동시에 VFX의 요구 사항들을 각 방산업체에 통보했다.
미 해군 입장에서는 노스롭 그루먼사의 안건이 마음에 들기는 했지만 기왕이면 다른 방산업체들의 안건과도 한번 비교해볼 요량으로 입찰 경쟁을 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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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14 톰캣의 개발 과정 》
미 해군의 제안 요구사항이 통보되자 맥도널 더글라스, 제너럴 다이나믹스, 노스롭 그루먼, LTV, 북아메리칸 등 5개 방산업체가 응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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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F-14의 동력인 TF30 터보팬 엔진. 원래 F-111용으로 선정되어 세계 최초의 전투기용 터보제트 엔진으로 생산되어 있었던 것이 F-111B의 채용 실패 이후 F-14A에 채용된 경우인데 F-14A용으로는 개량형인 TF30-P-412가 탑재되었다.
이후 비교 심사 결과 노스롭 그루먼과 맥도널 더글라스 안이 통과되었고 최종 심사에서 경합을 벌인 끝에 1969년 1월, 노스롭 그루먼의 모델 303E가 선정돼 제식명 F-14A로 채용되어 시제기 6대가 발주되었고 이후 6대가 추가되었다.
VFX안을 제시한 것이 노스롭 그루먼이었고 이미 충분한 준비를 거쳐 설계한 것이니 노스롭 그루먼의 승리는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F-14A는 F-111의 문제점을 최대한 참고하여 개발된 기체인만큼 보다 작은 크기만으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당시 소련의 폭격기는 미 해군에게 있어 큰 위협이었고 여기에 미그 23, 25, Su-15라는 강력한 신형 전투기들까지 가세하자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졌다. 특히 1967년 모스크바 에어쇼는 이른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T-34 쇼크에 못지 않은 미그 쇼크가 탄생했는데 이는 미그 25 폭스뱃이 마하 3이라는 경이로운 최대 속도를 선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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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1967년 모스크바 에어쇼에서 첫 선을 보인 이래 서방 국가들에게 "미그 쇼크"를 일으키게 한 주역 미그 25 "폭스뱃" 이 경이적인 기동력을 가진 전투기의 등장과 잇따른 바르샤바 조약국 및 친소 국가의 배치로 인해 서방측은 대응 전투기의 개발과 방공망 향상에 적지 않은 예산을 쏟아부었다.
미 해군으로서는 안 그래도 미그 17과 19, 21에게 베트남에서 시달리는 공군의 상황을 보면서 대책을 세우느라 고심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경이로운 기동력까지 발휘하는 적기를 요격해야하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신세가 되었다.
이에 따라 미 해군은 VFX에 F6D의 개발 당시의 요구사항을 대폭 수정해 소련의 폭격기들을 격추시킴은 물론 초음속 전투기들에 대한 요격이 가능하며 소련의 신형 전투기들의 위협에 대처하고 이를 제압할 수 있는 기동성을 첨부했다.
그리하여 F-14의 개발은 총 3단계로 나뉘어 실시되었다.
제1 단계는 F-111의 기술을 최대한 유용해 F-14A를 조기에 개발·실전 배치하는 한편 ATE 계획에 따라 개발 중인 F401-PW-400 엔진으로 교체해 대폭적인 출력 상승을 한 F-14B를 배치하고 최종적으로 ECCM 능력을 향상시킨 경량 레이더 FCS를 장비한 F-14C를 배치한다는 좀 정신없는 계획이었다.
당시 레이더라는 장비가 워낙 정밀하면서도 개발에 시일이 소요되는 것이라 기체 개발보다도 더욱 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F-14C가 사실상의 주력 기종으로 배치될 것이었다.
그 결과 F-14B는 생산 55호기부터 시작되고 F-14C는 후기 생산형부터 생산될 예정이었다.
그렇지만 F-14B는 시제기 1대만이 제작된 상태에서 중단되었고 F-14C는 아예 시제기도 등장하지 못한 상태에서 중단되었다. 노스롭 그루먼사와 미 해군이 추진한 F-14 3단계 향상 계획은 결국 20년이 지난 후에야 실현될 수 있었고 그 결과 퇴역 전까지 F-14B는 F-14A를 개량하여 등장했고 F-14D는 F-14B,C의 현실화형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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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AIM-54 "피닉스" 공대공 미사일 6기를 장착한F-14A
피닉스의 등장으로 인해 미국의 적들은 F-14가 이륙하는 순간 긴장을 늦추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 이란 - 이라크 전쟁 당시 이란 공군은 열세의 상황 하에서도 피닉스와 F-14A를 이용해 제공권을 장악하여 이라크 공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다시 개발 과정으로 돌아와 소련의 신형 전투기들에 대항하기 위한 F-14A의 개발 과정은 전광석화와 같이 진행되어 1969년 3월에 기본 설계가 종료되고 5월에는 목 업 심사에 돌입했다.
6월에는 시제기 제작에 들어갔고 11월에는 지상에서의 가변익 동작 시험을 완료했다( 불과 2~3개월 간격으로 개발이 완료되었으니 얼마나 속도가 빨랐는지를 알 수 있다 )
시제 1호기는 1970년 11월에 완성되어 12월 21일 처녀 비행에 성공했는데 이는 계획보다 무려 1개월을 앞당긴 경이적인 기록이었다.
그렇지만 너무 서둘러서 개발을 진행한 결과는 불의의 사고로 이어져 12월 30일, 제2차 시험 비행에서 유압 시스템이 고장을 일으켜 기체가 추락해 대파되었다.
다행히 조종사는 무사히 탈출해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자칫 잘못했다가는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순간이었다.
이에 따라 무리한 개발 일정 단축에 따른 사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개발 일정을 다소 늦춰 점검과 기술 검토를 강화하라는 지침이 내려졌고 그 결과 시제 2호기는 1971년 5월 24일에 처녀 비행을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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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F-14A는 VF-1과 VF-2를 통해 실전 배치되었고 베트남 전쟁 말기 미국인 구출작전인 "프리퀀드 윈드"를 통해 실전 데뷔했다. 하지만 워낙 비싼 대당 단가로 인해 미 해군의 애를 먹였다가 이란의 80대 도입으로 위기를 벗어나기도 하는 등 그 배치는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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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후임인 F/A-18 "호넷"에게 주력 전투기 자리를 내주기 전의 F-14. 하지만 그 퇴역의 원인은 어디까지 운용예산 때문이지 성능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이 때문에 미 해군 항공대는 여전히 F-14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1971년 말까지 총 7대의 시제기가 생산되어 여러 비행 시험을 거쳤고 13호 생산기이자 양산 1호기는 1972년 5월 12일 처녀 비행에 성공했다.
F-14A의 기체는 난항을 거듭하며 개발되어 시험 비행을 실시했지만 이는 다른 기체들에 비하면 수월한 편이었는데 이는 F-111을 개발하면서 축적된 가변익 노하우의 탓도 있지만 AN/AAWG-9 레이더 FCS, AIM-54 피닉스 공대공 미사일, TF30 터보팬 엔진 등을 그대로 유용했기에 가능했다.
여기에 티타늄 합금을 구조 재료로 대폭 사용한 결과 중량 감소라는 쾌거를 이룩했고 수평 안전판의 외부에는 세계 최초로 카본 복합재료를 사용하는 등 기체 경량화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 F-111보다 3톤이나 감소해 항공모함에서의 운용에도 큰 문제가 없게 되었다.
마침내 1972년 6월 28일, 미 해군의 항공모함 포레스탈에서 최초의 F-14A 이착륙 테스트가 성공적으로 실시됨으로써 F-14A는 탄탄대로를 걷게 되었다.
동년 10월에는 미라마 해군 비행장에서 비행 전환훈련를 담당하는 VF-124가 F-14로 기종 전환을 실시하는 등 F-14는 점차적으로 미 해군 항공대의 주력 기종이 되어갔다.
실전배치도 이뤄져 F-14의 실전 부대인 VF-1과 VF-2가 1972년 10월에 편성돼 1973년 7월 1일 F-14A를 수령해 12월부터 실전 배치되었다.
1974년 9월에는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에 배치되어 1975년 4월 말 사이공에 거주하는 미국인 구출작전인 "프리퀀드 윈드" 작전에 출격해 실전 데뷔했다.
물론 실전 배치가 시작되는 와중에 사고도 속출해 1972년 6월 30일, 시제 10호기가 저공 비행 중 해상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해 미 해군은 최고의 1급 기밀인 F-14A가 소련 정보국에 노출되지 않도록 신속하게 기체를 회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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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F-14A는 각종 개량이 이뤄져 운용되었지만 냉전 종식 이후 나날이 줄어드는 국방예산의 압박은 이 유능한 전투기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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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항공모함 루즈벨트의 VF-213에 배치된 F-14D
이 기체는 원래 개발 당시의 계획에는 없던 기종이지만 B형과 C형 계획의 실패로 인해 1984년에 공식 발표되었다. 이 기체는 F-14B 슈퍼 톰캣을 베이스로 개발되었는데 기존의 AN/AWG-9을 들어내고 신형 AN/APG-71 레이더를 도입해 완전한 디지털 운용으로 전환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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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신형 IRST 및 TCS, AYK-14 컴퓨터와 AN/ALR-67 레이더 경보 체계, 그리고 AN/ASN-139 관성 항법장치 등을 도입하고 사출좌석까지 마틴 베이커의 신형으로 교체하는 등 사실상 F-14B를 대대적으로 뜯어고친 성형미인이 되었다.
생산형은 1990년 3월 23일에 출고되었고 최초 생산은 약 127대가 계획되었지만 예산 문제로 인해 88년부터 90년까지 37대가 생산되는데 그쳤고 이후 기존의 A형을 개조하는 방식으로 18대를 추가 조달했다.
F-14D는 운용 자체 중량 19.96톤, 스패로 공대공 미사일과 사이드 와인더 공대공 마시일 각 2발 합계 635kg을 장착함과 동시에 연료를 절반인 3.72톤으로 줄이면 익면 하중이 269kg/㎡로 F-15, F-16, F/A-18보다 매우 낮다.
1973년 6월 20일에는 시제 6호기가 고도 1,500m에서 시속 1130km로 비행하던 중 자신이 발사한 스패로 공대공 미사일에 접촉하는 사고가 발생해 추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험난한 산고를 거친 결과 F-14는 오늘날 최강의 전투기 중 하나로 군림하고 있으며 이란 공군 역시 막대한 운용 비용을 투자해 지금 이 시간까지도 현역으로 운용 중이다.
비록 냉전 종식 이후 급격하게 삭감되는 예산으로 인해 현재는 전량 퇴역해 F/A-18 호넷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었지만 F-14는 결코 성능 때문에 퇴역한 것이 아닌 오로지 돈으로 퇴역했다는 점에서 세계 최강의 전투기라는 수식어를 잃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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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F-14D에 장착된 ROVER(Remotely Operated Video Enhanced Receiver) 항공기에서 보여주는 지상군의 움직임을 전방통제(육군)지역에서 확인하고 적군의 움직임을 확인하는 일종의 정찰장치이다. 우리공군은 F-15에 타이거아이 체계로 갖추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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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8에 그 임무를 넘겨주고 이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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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중에있는 항공기이다. 이란에 그 부품이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미국방부는 철저한 감시하에 모든 항공기 부품을 파괴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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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공비행중인 F-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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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날개 하부에 정밀 공격장치인 랜턴 공격장치를 장착하였다. 랜턴운용은 2대 정도만 개조하다가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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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탑건을 통해 우리에게 잘알려진 기종이다. F-18C/D 때만 해도 임무를 맏길 정도는 아니었다. F-18E/F가 등장하면서 F-14임무가 막을 내리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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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공격장치와 레이저 유도무기를 장착하고 출격대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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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엔진 출력으로 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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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모 귀환중.
이글은 블로그 '퍼싱의 전쟁이야기'를 주참조하여 내용 및 사진을 수정 보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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