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2기로 입학한 박경석은 입교한지 15일만에 6.25가 발발하여 당시 참모총장이던 채병덕의 탁상행정으로 생도대대에 편성되어 최전방에 동원되었는데
증언에 따르면 훈련다운 훈련이라곤 전혀 받지도 못한 상태에서 투입된지라 대부분 총기 영점도 간신히 잡은 상태로 사실상 훈련병을 최전방에 투입시킨 수준이었고
당연하게도 동기들은 절반이 넘게 죽어나가고 생존자들은 어떤 분이 박살낸 한강다리를 간신히 건너 후퇴하면서 대전에서 소위로 임관하면서 다시 최전방에 동원되었는데
그러다 50년 12월에 경기도를 통해 남침을 벌인 북한군 10사단과의 전투에서 포로로 잡히게 됨
당시 북한군에서는 남한 장교들을 포섭하려 여러 수단을 동원했다고 하고 그래서인지 별다른 해코지도 안하고 사단장이 직접 전향을 권유했는데
당연하게도 넘어가진 않고 탈출했지만 포로로 잡혀있던 동안 전쟁통에 기록이 꼬여서 죽은걸로 처리된 탓에 살아서 현충원에 자기 가묘가 들어선걸 확인하게 됨
본인 입장에서는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군생활동안 힘들때마다 자기 무덤(가묘)을 돌아보면서 각오를 다졌다고 하는데 해당 가묘는 20년 8월에 철거되었다고 전해진다.
여담1. 당시 북한군 10사단장은 전문섭이란 사람으로 4천명의 병력을 이끌고 경기도로 침투해 천명정도 남을때까지 지독하게 게릴라전을 벌이고 돌아간 부대를 지휘했고
포로로 잡혔다 탈출한 박경석 소위(당시)의 증언에 의하면 부하와 고락을 함께하는 지휘관으로 적이지만 배울게 많았다고 했는데
식량이 부족하자 부하들과 같이 식사를 줄이고 심지어 두달간 전향을 권유하면서 포로로 대리고있다 끝까지 전향을 거부하자 그냥 순순히 풀어줬다고 함
여담2.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박경석 예비역 준장은 월남 파병부대 1진, DMZ경비 대대장 등등 각종 실전과 요직을 거쳤으나
당시 정치군인들이 난무하던 군대에서 인사청탁 한번 거부했다가 미운털이 박혀서 진급 끄트머리에 준장을 간신히 달고 전역함
여담3.대략 10년도 전에 백선엽(시라카와 요시노리)를 띄워주면서 명예원수로 추대하려고 했던 일이 있었는데
이분이 본인을 포함한 6.25 참전용사들의 의견을 모아서 '간도특설대 출신이 원수가 되면 국군의 역사가 북괴에 종속된다'고 입장을 확실히 한 덕분에 명예원수 추대가 취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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