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만 둘인 평범한 50대초반의 아빠입니다.
큰아들은 사회복무요원 근무중 엊그제 육군훈련소 3주간의 훈련입영 했고
작은아들은 전방 7사단 8여단 근무중이네요.
두아들이 국방의 의무를 다 하고있는 요즘 보배의 군사.무기 카테고리를 자주 보게됩니다.
저는 92년 10월 논산입소대대(입영심사대) 입대해서 분류심사후 29연대 6중대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한참 훈련중에 10월28일 다미선교회 휴거로 온세상이 시끄러울 무렵 훈련소도 예외는 아니었죠
종교가 기독교인훈련병들은 관찰대상이 었고, 매시간 마다 인원통제,인원점검...,
다음날아침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죠.
훈련소 훈련을 마치고 논산연무대앞에서 밤기차를 타고 도착한곳은 대전역
여기서 버스를 타고 도착한곳은 환상의 육군통신학교
주특기 중계반송운용(단말병 323) 후반기교육을 받았습니다.
육군통신학교는 최신시설에 모든게 천국이었죠. 면회도 가능했고, 우정의무대도 왔었습니다.
교육후반기에 필기시험 누락되면 일빵빵 간다고 해서 정말 공부 열심히 한듯합니다.
이곳에서 대통령선거도 통신학교 밖으로 나가서 한듯합니다.
후반기교육 수료후 버스타고 밤기차 타고 도착한곳이 바로 안동
단말병 주특기는 최소 사단급 통신대대로 떨어지고 전,후방의 장단점이 다 있어서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기대반 두려움반 가슴이 콩당콩당
안동의 보병 제70사단(동원사단) 통신대대 단말병으로 군생활을 합니다.
단말병 티오가 많아서 일병때 무전병으로 보직변경
주요임무는 사단지휘통제실근무, 헬기유도병, 중계소파견, 통신대대군종병, 차트병, 동원훈련장 조교등
1993년 봄 중계소근무중 선임하나가 점프해서 서울까지 갔다가 서울에서 무장탈영병사고 터져서
부대 인원점검하고 난리났고, 겨우 연락이 되서 서울서 택시타고 복귀한기억도 나네요.
1994년 7월 8일 김일성사망일 후방이었지만 대단했지요. 바로 비상걸리고 물자분류하고, 하루 완전군장에
일주일정도 단독군장으로 생활한듯 합니다. 덕분에 계획되었던 팀스피리트 훈련은 취소되었지요.
자대 군생활중에서 혹한기훈련1번, 유격훈련2번, 대대ATT2번, 사단 쌍룡훈련1번, 50사단123연대 독수리훈련1번
했던 기억이 납니다.
무전병은 근무, 파견, 훈련... 그중에 훈련뛰면 항상 선선발대로 나가서 부대이동로 중간에
이름모를 산정상에서 무전중계소 점령해서 중계 대기를 해야합니다.
겨울이고 여름이고 비가오나 눈이오나 안테나 치고 무전계통후 대기합니다 (번개치면 개꿀)
나중에 전역후 동원훈련나가서 얘기 들어보면 단말병(무전병)은 저마다 다들 힘들었다고 얘기하지만
제가 보기엔 전방 사단통신대대가 파견이 많아 조금 편했고, 후방이 비교적 훈련이 많아 힘들었을듯 합니다
넋두리 비슷하게 지난시간을 회상해보았는데 지금도 군생활하는 모든 용사들
다른것 다 필요없고 건강하게 전역하십시요.파이팅!!
뚝형
독도와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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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부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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